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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청와대 정무행정관을 그만두고, 강릉에 내려왔다. 이해찬대통령후보 특보로 강릉에서 이해찬후보의 승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릉에서 이해찬후보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이해찬후보의 정치철학과 비전에 동의했고 그 누구보다 한나라당과의 대결에서 가장 본선경쟁력있는 후보로 이해찬후보를 선택했다.
그리고, 경선승리를 위해 하나하나 준비해갔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었다. 경선 최초로 강원도에서 이해찬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특히 강릉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이해찬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경선전에 우리의 승리를 의심했던 몇몇 지역선후배들과 친구들이 우리의 승리, 나의 승리를 치하했다.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도 기뼈했고 나 역시 청와대를 그만두고 내려와서 올린 첫 쾌거였고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경선의 최종결과는 정동영후보의 승리였다.
나는 패배의 아쉬움을 빨리 잊었고, 당연히 경선에 승복하고 우리당의 후보인 정동영후보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강릉시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정동영후보의 선거연설원으로 강릉지역을 샅샅히 돌며 목이 텨져라 유세를 했다. ‘거짓말 후보 이명박후보를 심판하고, 평화대통령-가족대통령 정동영후보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12월 19일 우리는 패배했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나는 쉬고 싶었다. 그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이명박후보에게 졌다는 사실보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 앞에 모든 정치적 의지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결정을 한다. 내가 강릉에 와서 이해찬, 정동영 그리고 대한민국과 강릉의 미래에 대해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그냥 주저않는다면 그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쳐온다고 해서 너도 나도 책임없이 뒤로 숨어버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철학과 비전이 살아있다. 다만 이것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실망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의 오류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우리의 철학과 비전에 동의하는 국민들을 위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다.
‘창조적 생각이 넘치고, 모두가 골고루 행복한 서민정치’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요 꿈이다. ‘긴 반성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위해 다시한번 신발끈을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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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청와대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운 경험이다. 국정운영의 최고 정수리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새벽 5시 혹은 6시에 출근을 시작해서 끝없는 보고서와 싸운다. 국회, 정당, 정부에서 끝임없이 돌아가는 정치상황을 점검하고, 보고하고, 대통령님의 국정운영철학과 방향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끝임없이 노력한다.
매일 매일 사람을 만나고, 보고서를 읽고 쓰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싸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가고 하루 하루 떨어지는 임무를 해결하느라 깊이있게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없다. 청와대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훈련되고 숙성되어 있는자가 이곳에 와서 자신의 혼신을 뿜어낸 후 그 역량이 소진되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도의 능력과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오고, 수많은 고급정보들을 물어보고, 때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사인양 무수한 부탁들을 받게되고...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쉽게 거부하지 못하고 때로는 정중하게, 때로는 사무적으로, 때로는 엄격하게 그러다보면 건방지다는 둥, 약속을 잘 안지킨다는 둥 많은 구설수에 시달리고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중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영광이며, 혹은 매력적인 일이다.
정무행정관은 정당, 국회, 정부와 관련된 정무적 활동을 하는 곳이다. 전직대통령이나 국가원로들을 대통령님을 대신하여 찾아 뵙고 안부를 묻는 일에서부터, 정부의 법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 장관, 국회의장, 상임위원장, 해당 국회의원을 설득하는 지나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통령님의 정무적 활동을 보좌하는 일이다.
정무행정관으로 있으면서 전직대통령님을 뵙게된 것은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일이었다. 특히, 김영삼대통령님과 1시간이상 가량 환담을 나눈 기억은 잊을 수 없다. 그때 우리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마중나와 우리가 차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던 모습은 국가지도자로써 혹은 정치지도자로써 그 누구도 가볍게 여기지 않은 그의 오랜된 정치연륜에 대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가장 보람있었던 일들은 강원도와 강릉에 관련된 현안들은 챙겨보는 것이었다. 대통령님과 횡성한우 마을을 방문해서 한우농가의 실태 및 시장현황을 살펴보았던 일, 동해안 철조망 제거현장에 가서 진행정도를 점검했던 일,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 강릉시의 국비지원신청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각 부처를 방문 재정담당관과 상의했던 일, 강릉NGO센터건립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시청과 시민단체등과 연락했던 일, 특히, 지역인사들과 만나 지역현안과 민심을 청취했던 일 등 지역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발전을 위해 미력이나 노력했던 일들은 지금도 다시 청와대에서 일하고 싶은 미련을 갖게한다.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보다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한것이 아쉬움이 남지만, 그때의 소중한 경험들이 나는 물론 대한민국과 강릉의 발전을 위해 귀하게 쓰일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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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당선 그리고 우리들은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사람, 새천년민주당의 당직자, 정치조직을 만드는 사람, 지역으로 내려가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 등 당시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역출마를 결정했다. 겁 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 나이 35세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대통령의 당선만으로 새로운 정치와 정치혁명이 가능하지 않으며, 노무현대통령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가 출마하고 새로운 정치혁명과 정당개혁을 위한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갔다.
결국, 나는 강릉경찰서 앞에 ‘강릉포럼’이라는 사무실을 개소하고,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강릉의 민주개혁세력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시민사회세력이 강릉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하기위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새천년민주당의 지구당을 방문하고, 민주개혁인사들과 지역의 지인들을 만나 새로운 정치를 역설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개소식이 있던 날 50여명의 참석자와 몇몇의 지역정치인, 언론사 기자등의 참여속에 행사를 무사히 치루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너무 준비없이 시작한 새로운 작업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서울에서는 새천년민주장의 분당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한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분당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새로운 정당의 창당작업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참여를 권유했다. 지역에서 악전고투하던 나로서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 선배 한분이 지역출마를 준비하며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위한 작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한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당시 서울로 올라가 창당작업에 참여하더라도 ‘강릉포럼’의 불씨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했어야 했다는 미련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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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을 승리하고 나는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국에서 일을 하게되었다. 처음으로 집권여당의 당직자로 중앙당의 당무를 기획조정하는 전략부서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오래된 당무경험을 갖고 있던 기존 당직자와 풋내기 당직자로써 당내에서 노무현후보의 정치적 철학과 비전을 확산하고 대선승리를 이끌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다른 동료들이 퇴근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남아 보고서와 씨름했다. 당시 만들었던 보고서의 내용은 지금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선배국장님의 지시에 따라 무엇인가 많은 보고서를 생산했지만 아마도 나의 생각보다는 자료를 정리하고 요약하는데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한번은 나의 보고서 당대표에게 전달되고, 청와대에까지 보고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대북정책과 관련된 보고였던 것 같다. 당시 보고서의 핵심내용은 국내보다는 김대중대통령의 국제적 능력을 활용하여 외국지도자나 언론을 통해 우리 대북정책의 정당성과 효과성을 간접적으로 지원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환경이나 정치환경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이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명분과 정당성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한번은 한나라당의 공작정치에 관한 보고서가 정치일간지에 게재된 적이있다. 이런 것을 문건유출 사고라고 한다. 우리 내부에서 작성된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어 기사회되는 것이다. 나로 인해 유출된 것은 아니지만 선배국장 문건보안에 더 신경쓰라고 지시했고,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보고서 작업이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보다 신중하고 내실있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현실 정치권에 들어가 처음으로 일한 분야가 전략기획분야였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향후 거의 모든 일들이 전략기획분야에 일이었고 선배동료들에게도 전략기획통을 인정받게 된다.
결국, 2002년 노무현대통령후보선거대책위원회에서도 이해찬기획본부장님과 함께 대선전략과 기획을 위한 일을 하게된다. 아마 당시 일중에 가장 기억남는 것은 정몽준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한 작업이었고,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후일담은 지금도 즐겨 이야기하는 주제 중에 하나다. 많은 사랃들은 보도를 통해 그 일련의 과정과 결과만을 보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일어난 숨가뼜던 진행상황을 직접 지켜보았다. 지금도 기억하면 다시한번 그 때의 기적을 믿을 수 없다. 당시 노무현후보의 정치철학과 현실정치에 대한 빠른 판단력은 아마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노무현후보의 그 능력은 국민을 믿고 원칙과 상식을 지킨다는 단순한 원칙이지만,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을 자주 볼 수 없다. 대부분은 얄팍한 꾀아 전략적 생각을 우선하여 국민의 생각을 져버리는 경우 비일비재하다.
나는 다시한번 생각한다. 정치는 국민을 믿고 원칙과 상식을 따르는 것이며, 이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은 국민과 함께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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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선이 임박하면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경선이 준비되고 있었다. 당시 이인제, 한화갑,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등 대선후보군들이 회자되고 있었고 이인제대세론이 서서히 일고 있었다. 당시 나는 자연스럽게 노무현, 김근태 그룹의 움직임을 민감히 살펴보고 있었고, 당시 이인제대세론에 맞서 범민주단일후보 혹은 김근태-노무현단일후보론이 서서히 머리를 들고 있을 때다. 그리고 각각의 캠프들이 서서히 구성되고 있었다. 간혹 선배들과 지인들의 캠프합류 소식들도 전해듣곤 했다.
당시 나는 확고했다. 노무현을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 88년 청문회에서 받았던 강한 인상,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헌신적 활동, 낡은 정치와의 끊임없는 투쟁 등 나는 노무현은 국민의 원치과 상식의 기반위에 있는 진정한 정치인이라는 점에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낡은 정치와 손을 잡은 이인제의 대세론을 깨고 새로운 정치의 포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필승카드로 나는 노무현을 선택했다. 그리고 노무현캠프로 무작적 방문했다.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라 봉급도 없고 그져 노무현이 좋아서 모임사람들과 어울려 새로운 정치혁명을 위해 무작정 정신없이 일했다. 밤에는 아르바이트르 뛰어 생계를 유지하고 낮에는 노무현후보의 승리를 위해 앞만 보고 일했다.
내가 아는 지인이나 참여하고 있는 조직 어디에 가도 노무현을 얘기했다. 그러나 가족, 친구, 선후배 모두가 이인제의 대세론 앞에 노무현의 승리를 의심했다. 그런데 내가 확신을 갖게된 것은 아버지의 선택이다. 내가 노무현캠프에 참여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너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썩내키지 않고, 또 가능성이 없는 후보의 캠프에서 일하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니 어디가서 말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노무현이 승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의 중심에 노무현이 있다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제주, 울산, 광주를 거쳐 노무현의 승리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새로운 정치와 국민통합을 선택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국민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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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시절부터 사겼던 지금의 집사람과 결혼했다. 집사람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같은 학번, 같은 동아리, 같은 운동조직에서 있었던 그야말로 나를 너무나 잘아는 친구이다. 눈빛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십년지기 친구와 결혼한 것도 나에게 있어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크게 싸우는 적이 별로 없다. 가능하면 서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고있다. 간혹 사소하게 다투지만 서로 양보하기 때문에 내가 삐치지 않는 이상 쉽게 화해한다. 그리고 우리 둘사이에는 벌써 10살의 남자녀석과 8살의 딸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이 녀섴들을 보면 우리 속도 모르고 마냥 치기어린 장난에 투정에, 다리도 부러지고, 간혹 끙끙 앓고 그럴때면 정말 대신 아프고 싶은 안타까움이 생긴다. 부모의 마음 다같다고 그렇지만 얘들은 키우면서 가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눈물이 글썽거리곤 한다. 혹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이때마다.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결심하지만 잘 안된다. 이게 인지상정인가보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부모님에게 치기어린 투정과 불평을 늘어놓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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